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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dfkim | 2009/02/19 15:41

퇴원 후 1개월(4)

내가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니 아내는 건너 방에 혼자 지내도록 해주었다. 통증방지용 팩을 등과 옆구리에 붙여도 좀처럼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내가 정성 들여 끌인 전복죽도 식욕이 당기지 않았다. 음식을 넘기려면 목이 메여 힘들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씹어야 겨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설사로 하루에도 여러 번 화장실을 들락였다. 병세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퇴원 후 1주만에 외래진찰을 하러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 마음 졸이며 의사 앞에 앉았다. 모니터를 잠시 보며 퇴원직전 검사한 결과를 보더니 위암초기로 항암제는 필요치 않다고 하는 바람에 아내와 이구동성으로 손뼉을 치며 안도했다. 의사가 구세주같았다.
갑자기 통증도 살아지는 느낌이었다. 의사에게 통증으로 인한 불면을 호소하니 사진을 찍어보자고 한다. X선 사진을 찍고 다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입원했을 때 함께 복도에서 운동하던 환자도 나처럼 정기 진료 차 와서 반갑게 인사했다. 나는 통증으로 인한 불면증으로 몰골이 좋지 않은데 통증을 그는 얼굴이 좋았다.
다시 의사 앞에 서니 X선 사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음식을 천천히 먹으라며 소화제 3개월 치를 처방하며 6개월 후에 정기 검사를 하러 오라고 한다. 수납에서 아까 만난 환자를 만났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으니 그는 항암치료를 해야 하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불과 10분여만에 외과 대기실에서 상황이 역전되는 기분이다. 의사의 말 한마디로 내 미래가 결정된다.
삶과 죽음자체가 불확실한 것 같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위장을 자동차 부속품처럼 일부를 제거하고 이어 붙여 생존하는 것이 내 자신의 삶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만 진실인 것 같았는데 그렇지만 도 않은 것 같았다.
안내 데스크에서 췌장암 수술한 같은 방 젊은이가 궁금해 물으니 아직도 그 병실에 입원 중이라 올라가 반갑게 만났다. 몸에 호스가 여러 군데 연결되어 있고 부부의 얼굴은 희망으로 가득했다. 의료기술이 죽을 사람도 살리는 기적을 만들고 있다.
수술부위의 통증은 회복되고 있었다. 복강경수술 덕인 것 같았다. 그러나 어깨와 늑골주위의 통증은 완화되지 않았다. 호흡할 때 갈비뼈가 움직이면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갈비뼈가 바닥에 닿으면 자지러질듯한 통증이 왔다.
의사도 괜찮다고 하니 혼자 견뎌야 할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의료기술이 더욱 발달하여 이런 고통도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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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dfkim | 2009/02/03 09:26 | 위암 투병기 | 트랙백 | 덧글(0)

동병상련(3)

나보다 3일 먼저 수술한 옆 침대 환자는 대학 교수로 건장한 체격의 남성인데 회복이 빨라 내가 통증으로 고생하는데 식사가 나온다. 크리천이라서 교우들이 많이 와서 매일 기도를 하고 돌아간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방학이라 밤에 자며 간병을 한다. 직장에 나가는 부인은 퇴근을 병원으로 한다. 며칠 같은 방에 있으니 환자 가족이나 주변상황에 대해 알게 된다. 인격과 예의를 갖춘 환자와 한방을 쓰는 것도 회복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우리 회사 직원 몇이서 다녀갔다. 누님과 형수님 처남내외, 아내의 친구, 사돈댁 내외도 시골에서 힘든 걸음을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문병 오는 친지들이 고맙지만 인사를 할만한 상태가 못 되는 나 자신이 무력함에 화가 났다.
며칠이 지나 옆 환자가 퇴원을 했다. 아내와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밖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했다. 암병동은 항상 대기자가 많아 바로 새 환자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30대 후반 젊은이인데 얼굴색이 검은 것이 심각해 보였다. 췌장암이라고 했다.
담당의사가 옆 환자에게 하는 얘기가 커튼을 뚫고 내가 누운 침대에 들렸다. 췌장암은 수술 후 사망률이 높고 수술도 힘든 암이며 장기간의 항암치료가 힘들어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다행히 환자가 젊어 견딜 수 있을 것이고 하느님에게 열심히 기도하라고 했다. 젊은 부인은 밤새껏 남편의 손을 자기 가슴에 묻고 밤을 지새는 모습이 애처롭다.
요즘 병원도 상업성에 치우쳐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는데 입원해 보니 의사와 환자에 대한 희생정신이 곳곳에서 보여 아름다운 세상을 체험하였다. 나를 수술한 팀의 젊은 의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상태를 보러 와서 격려를 해 주었다. 어느 날은 수술이 늦었다면서 밤늦게 찾아 오기도 했다. 환자위주로 봉사하는 간호사를 비롯해 모든 병원의 직원들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수술 후 3일이 지나니 침대에서 일어날 때 고통이 조금 줄어들어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물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가스가 나오면 음식도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관장을 해도 배에 가스만 차고 요지부동이다. 복도를 걸어 다니는 운동은 거르지 않았다. 침대의 머리부분을 높이고 밤새 고통스런 시간은 하루가 여삼추같이 길게 느껴졌다.
소변 줄을 빼고 나니 보행이 훨씬 자유로웠다. 피 주머니의 색도 많이 엷어졌는데 관통부위가 무척 아팠다. 수술 후 5일 째 피 주머니를 제거하는데 뱃속에 있던 비닐 관의 길이가 1m는 더 되어 보였다. 누워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오고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통증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물을 마셔도 된다고 간호사가 알려왔다. 거의 1주 만에 마시는 물이라 반가웠지만 목도 마르지 않고 식욕도 없다. 낮에 죽이 나왔지만 한술 뜨고 먹지 않았다. 함께 나온 두유는 조금씩 마셨다. 입원대기 환자가 많아 식사가 나오고 2,3후면 퇴원 할 것 같았다. 식사를 억지로 하였지만 설사다. 의사는 내게 이상이 없다고 했다. 퇴원 전날 내시경과 X선 사진을 찍었다.
췌장암 옆 환자가 수술하는 날 나는 퇴원했다. 입원 8일만이다. 그의 부인이 다시 희망을 찾기를 기도했다. 가운을 벗고 캐비닛에 두었던 입원할 때 입었던 옷을 입으니 통증은 있지만 걸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진눈깨비가 펑펑 내렸다. 둘째 사위 차로 가락동 수산시장에서 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꿈만 같았다. 수술부위 통증으로 복대는 풀지 않았지만 눈에 익은 것들을 다시 가까이 할 수 있고 소지품도 다시 챙기게 된 것이 무한히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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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dfkim | 2009/01/27 16:57 | 위암 투병기 | 트랙백 | 덧글(0)

입원, 수술(2)

2008년 1월 12 토요일 영동세브란스 6층 암 병동 2인실에 입원하여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옆 침대에는 50대 남성이 위 절제수술을 받고 아파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수술 3일 째라고 했다.
저녁식사가 나왔다. 가운만 입었을 뿐 아직 환자가 아니니 침대에 앉아 식사하기가 어색했다. 간호사가 와서 밤에 관장을 할 것이라 알려주었다. 수술은 이틀 후 월요일이 될 것이라며 링거를 꽂는다. 걸쭉한 우유 색 1L 분량의 관장약을 지시대로 삼키는데 거부감이 들었다.
화장실을 몇 차례 들락이다보니 밤 12시가 넘었다. 아내의 부축을 받을 정도로 기진맥진해졌다. 날이 밝으니 관장약을 또 복용하란다. 종일 화장실 문이 닳도록 다니며 내장을 모두 비웠다. 밤이 되자 수술부위 감염방지를 위해 쉐이빙을 했다. 자신이 서서히 수술과정을 밟고 있고 옆 침대 환자모습을 닮는 것을 느꼈다.
사방에서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나를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나에게 한걸음한걸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나에게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가할 것이다. 속이 쓰리고 힘이 점점 빠진다.
오후 내시경 실에서 수술부위 촬영과 클립을 위에 찝어 놓았다. 수면내시경이라 나는 몰랐는데 아내는 커튼 사이로 보이는 모니터에 클립을 찝는 화면을 봤다고 했다. 저녁에 차석의사가 나를 간호센터로 불러 위암수술과정과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싸인을 했다.
복강경수술로 나의 복부 다섯 군데를 조금씩 열고 기계로 위를 절제하는 수술로 환자회복 속도가 빠른데 위암 초기환자가 할 수 있는 수술 방법이라고 한다. 암이 위 하부에 있어 위의 아래쪽 절반을 절제할 것이라고 했다. 위 상부보다 하부절제가 회복이 빠르다고 위로한다.
수술 후에는 열심히 운동하고 긍정적 생각을 하면 조기에 퇴원할 수 있다며 옆 침대 환자도 나와 같은 수술을 했는데 회복이 빠르다며 그를 본받으라고 했다. 나를 수술하는 팀은 집도의를 정점으로 4,5명의 팀이며 위암 수술만 전담한다고 했다.
월요일 수술 예정일이 밝았다. 3일을 수술 대기 상태로 고통을 받고 있느니 오히려 수술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 정오에 수술 장 두 사람이 나를 바퀴 달린 베드에 눕혀 데리고 승강기로 수술 장으로 데리고갔다. 수술 장 앞에서 베드에서 내려 수액을 들고 아내에게 잘 하고 오겠다고 하니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선다. 기분이 착잡했다.
마취실 침대에 누우니 주소 성명 등을 질문하며 신원 확인을 한다. 얼마 있으려니 누운 채로 수술 장으로 가서 수술대로 옮긴다. 흰 타일바닥과 벽이 아주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손발을 묶는 것까지 기억이 났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드니 온몸이 고통으로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물으니 오후 6시다. 5시간 동안 수술을 한 모양이다. 킬리만자로 키보 트레킹에서 고산증과 추위 속에서의 생사갈림길이 생각났다. 그보다 더 큰 고통을 처음 느꼈다.
입원실로 돌아와 넓은 침대에 누웠는데 내몸 여러 군데에 주사바늘과 호스가 꽂혀있다. 수술 부위는 물론 어깨와 발뒷꿈치가 특히 통증이 심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신음이 저절로 나오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통증과 불면의 나날의 연속이었다. 계속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 운동을 해야 회복이 빠르다기에 수술 다음날부터 복도를 어기적대며 걸었다. 나 같은 환자들로 복도는 아침부터 붐볐다. 모두 회복의 희망을 품고 홀로서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 100여미터 복도 양끝에 의자가 있어 앉았다가 다시 걷기를 몇 차례 하였다. 소변줄, 핏줄 수액 줄 등 서너개의 줄이 몸에 연결된 상태로 하나같이 핏기 없는 얼굴 중에 나도 하나이다.
어느 방에서는 의사 간호사들이 분주히 뛰어들어가고 침대 주위에 기계와 사람들이 모여 있고 우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니 환자가 위독한 것 같다. 6층에서 내려다보는 길가에는 영구차가 발인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저들의 길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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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dfkim | 2009/01/25 10:10 | 위암 투병기 | 트랙백 | 덧글(1)

위암 진단(1)

2008년 1월 4 위암판정이 나왔다. 40여년 전 공군 훈련병 시절 소화불량에 걸려 조금만 과식하면 며칠씩 더부룩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열심히 자전거를 타며 음식을 조심하니 견딜 만 했다.
60을 넘기면서 성인병과 암에 대한 정기검진을 자주했다. 만성위염으로 위점막에 이상이 있으니 매년 위내시경 검진을 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몇 년 전부터 매년 위내시경검사도 받았다. 2007년 12월28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위내시경 검사를 받은 결과 궤양이 생겼다며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1주 후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결과를 보러 갔는데 담당의사가 내게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면서 조직검사결과 위암으로 판정됐다며 CT를 촬영하라고 했다. 위장 안의 음식물이 모두 소화되어 장으로 내려가야 촬영이 가능하다며 시간예약을 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기분이 착잡했다. 아무것도 모를 아내가 놀랄 것이 걱정되었지만 사실대로 말하기로 다짐했다. 설거지를 하던 아내는 웃으며 괜찮지?하였다. 나는 사실대로 얘기하고 걱정 말라고 했다. 갑자기 침묵하는 아내의 등뒤가 경직되어 불안해 보였다. 충격을 입은 것 같았다.
CT촬영 예약시간에 맞춰 함께 병원에 갔다. 촬영 전에 주사도 맞고 물도 마셨다. 아내에게 옷과 소지품을 맡기고 난생 처음 CT촬영을 했다.
촬영결과 위암초기이고 큰 병원에 가서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하며 영동세브란스를 추천해주었다. 소개장과 내시경촬영 CD 등을 봉투에 넣어 받았다. 오후 4시가 넘어 세브란스 외과의의 문진이 있었다. 사진과 소견서를 보더니 위암이 불치병이 아니고 초기인 경우 5년 생존율이 90% 정도라며 안심시킨다. 예약순번을 검색하더니 늦어도 10일 이내로 수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혈액채취를 하고 일단 병원을 나오니 밖이 어두워졌다. 점심도 거른 채 오후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긴장감 때문에 피곤한 느낌도 없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10일 후 수술을 받은 다음 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주위에서 암투병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삶의 질이 떨어짐은 물론 암을 떠나서 일상이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재발로 완치보장도 없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장기간 투병으로 가족간의 유대는 물론 가정이 파괴되기도 한다. 내가 죽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내가 이 충격을 잘 참아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밤잠을 설치고 식욕을 잃어 더욱 증세를 악화시키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친지 들에게 내가 암에 걸려 수술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모두들 놀랐지만 잘 될 것이라는 격려를 해주었다.
초조하게 기다린지 3일 만에 입원날짜와 수술예정일을 알려왔다. 한 시각 한 시각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불면증이나 식욕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신기했다. 죽는 것은 그렇게 무섭지 않지만 고통이 참기 힘들 것 같았다.
입원 당일 오후 4시에 병실에 예약이 되어있어 점심은 보신탕을 먹었다. 어쩌면 이런 멋진 점심식사는 앞으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소지품 없이 가는 것이 좋을 듯 해서 병원으로 가기 전에 모든 소지품은 모두 집에 남겨둔 채 집을 나섰다. 둘째 사위 차로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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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dfkim | 2009/01/24 06:52 | 위암 투병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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